커뮤니티Community

전화고객상담센터

항상 친절히 안내하겠습니다.

042-257-1979

상담시간 09:00 - 18:00
주말 및 공휴일은 휴무입니다.

현장소식

> 커뮤니티 > 현장소식
[이코노미조선] ‘심청전’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 Best
112.☆.162. 102
작성자 : 대전광역자활센터
 
 
‘심청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로, 조선시대에 쓰인 판소리계 한글소설이다. 지은이와 정확한 창작시기는 알려지지 않으나, 필사본·판각본·활자본 등 80여 종의 다양한 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를 모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印塘水)에 자기 몸을 던져 희생한다는 내용이 줄거리다. 예부터 전해오는 효행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12년에는 이해조가 ‘심청전’을 신소설 ‘강상련’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심청이 가족은 지금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소설 속 주인공 심청의 어머니 곽씨 부인은 딸을 낳고 7일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어진 성품이 옥황상제의 눈에 띄어 옥진 부인으로 환생해 용궁에서 딸과 재회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소설 도입부에 곽씨 부인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나오는데, 그녀는 양반의 자제로 ‘현철(賢哲)하고 덕과 아름다움과 절개를 갖췄으며 제사를 받드는 법이나 살림하는 솜씨며 못하는 일 없이 다 잘했다’고 표현되고 있다. 가세가 기울자 그녀는 삯바느질, 삯빨래, 술 빚기, 떡 찧기, 동네 혼상대사(婚喪大事) 음식 만들기 등 한시도 몸을 쉬지 않고 알뜰히 살림을 챙긴다. 눈 먼 남편을 대신해 곽씨 부인이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실질적 가장인 셈이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숨을 거두니 심청이네는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 질뿐이다.

곽씨 부인은 어린 딸과 눈 먼 남편을 남기고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저 건너 김동지 댁에 돈 열 냥을 맡겼으니 그 돈 찾아다가 나 죽은 초상에 쓰시고, 항아리에 넣은 양식을 해산(解産) 쌀로 두었다가 못 먹고 죽고 가니 장사 치른 다음 양식으로 쓰시고, 귀덕 어미는 나와 친한 사람이니 내 죽은 뒤에라도 청이 안고 가 젖 좀 먹여 달라하면 괄시는 안 하리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저 가족 걱정뿐이다.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급작스런 사망은 남겨진 가족들의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진다. 배우자는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이든 시작해야 하고 부채가 있다면 채무의무를 져야 한다. 노후생활은 불안해지고 자녀는 교육의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이 해체되기도 한다.

만약 심청이 가족이 현재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어떠했을까. 청이가 열 살이 넘어서부터 바느질과 길쌈을 했지만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에 해당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보호를 받게 된다. 이 법은 ‘신청주의’로 본인이 직접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에 접수하면 소정의 소득과 재산 심사 과정을 거쳐 생계·주거·의료·교육·자활급여 등을 지원 받는다.

지난 2000년부터 시행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2015년 7월 도입 15년 만에 새롭게 개정될 예정이다. 이번 법 개정은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 ‘교육급여 지급 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주거급여 지급 시 해당 지역 월세수준의 반영’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기존에는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 등 모든 급여가 획일적으로 지원됐지만, 앞으로는 소득이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수급자 상황에 맞춰 필요한 급여는 계속 지원하는 맞춤형 방식으로 개선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표되는 공공부조제도는 오늘날 심청이 가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가치로 5억원이 훨씬 넘는 공양미 300석
어느 날 심봉사는 딸을 마중하러 나갔다가 개천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당한다. 그 때 마침 길을 지나던 몽운사(夢雲寺) 화주승(化主僧)이 심봉사를 구해준다. 심봉사의 딱한 사정을 듣고 화주승은 몽운사에 공양미 300석을 시주로 올리고 지성으로 빌면 두 눈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이에 심봉사는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기로 덜컥 약조를 한다. 심봉사가 지금 어떠한 처지인가. 앞 못 보는 자신을 대신해 딸자식이 동네 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처지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 공양미 300석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잠깐 여기서 궁금한 점 한 가지. 공양미 300석은 현재가치로 하면 얼마 정도나 될까. 석(石)은 척관법(尺貫法) 단위이며 우리가 쓰는 ㎏으로 환산하면 1석(石)은 144㎏이 된다. 그러니 300석은 4만3200㎏에 해당하고, 쌀 한 가마니가 80㎏이니 가마니로 나누면 총 540가마니가 된다.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쌀 20㎏ 시세가 평균 5만원 정도이니 한 가마니는 20만원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양미 300석은 시가 약 1억800만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쌀이 지금보다 훨씬 더 귀했기 때문에 단순 시세비교는 어려울 것이다.

300석의 현재가치를 추정해보는 다른 방법이 있다. 조선조 정조 때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쓴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이란 책에 보면 조선조 세종 때 관리들의 녹봉(祿俸), 즉 월급이 계급별로 나뉘어 기록돼 있는데 당시는 돈이 아니고 현물 곡식인 쌀, 보리, 콩이 지급됐다. 1년 녹봉으로 정1품(영의정, 좌·우의정)은 쌀 11석(石)2두(斗), 그리고 콩 6석(石)을 지급받았다. 쌀값 대비 콩값(약 12배)을 감안해 모두 쌀로 환산하면 총 83.2석이 된다. 2014년 기준 국무총리 연봉이 1억5200만원이니 이를 대입해 보면 300석의 현재가치는 약 5억4800만원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금액의 정확성을 차치하고라도 아무튼 심봉사 형편으로는 절대 쉽게 구할 수 없는 금액임에는 틀림없다.

심봉사가 그렇게라도 눈을 뜨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심청전 도입부를 보면 그는 처음부터 봉사는 아니었다.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명망이 자자하던 집안 자제로 태어나 나이 스물에 눈이 먼 것으로 나온다. 그가 곽씨 부인과 결혼해 나이 사십이 돼서야 낳은 늦둥이 외동딸이 심청이인 것이다.

“아가, 아가, 내 딸이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 먼저 가르치고 침선방적(針線紡績) 잘 가르쳐 요조숙녀 좋은 배필 군자호구(君子好逑) 잘 가리어 금슬우지(琴瑟友之) 즐기오고 …” 청이를 낳고 곽씨 부인과 나눈 이야기 속에 심봉사가 얼마나 딸을 아끼며, 남부럽지 않게 잘 기르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눈을 뜨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겠지만 일단 두 눈만 뜨면 아마도 불쌍한 딸을 위해 좋은 옷을 해 입히고, 맛있는 음식 배불리 먹이고, 교육도 한 번 제대로 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심봉사에게 있어 공양미 300석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이뤄줄 수 있는 도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분수를 망각하고 무리하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결국 이 말이 씨가 돼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됐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많은 부모들이 지나친 자녀 교육비 지출로 생활이 궁핍해 지는 에듀푸어(edu-poor)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돌아보면 무엇이든 도(度)를 넘어서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럽기만 한 황주 도화동 주민들의 선행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자 홀로 남은 심봉사는 하나뿐인 착한 딸을 자기 눈뜨자는 욕심에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후회와 눈물로 보낸다. 게다가 몽운사 주지승 말대로 청이 목숨과 바꾼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쳤건만 수년이 지나도록 감긴 눈은 떠지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딸 잃고, 쌀 잃고 눈도 뜨지 못한 채 늙고 외로워 수발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 이제 딱 죽게 생겼다.

그런데 심봉사가 살았다는 황주(黃州) 도화동(桃花洞) 주민들은 정말로 착하기 그지없다. 어진 곽씨 부인을 생각하는지 효녀 심청이를 생각하는지 심봉사를 위해 마음 극진히 돕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곽씨 부인이 죽었을 때도 딱한 사정 알고 십시일반(十匙一飯) 돈을 모아 장례를 치렀는데 심청전은 ‘비록 가난한 집 초상이라도 상여 치레는 매우 현란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청이 어릴 적 젖동냥할 때 돌아가며 젖 먹여주고, 어린 청이가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 밥 빌러 갈 때도 밥에 김치, 장까지 아끼지 않고 덜어 주던 따뜻한 사람들이다.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도 남의 딱한 사정을 내 일처럼 여기고 도움에 인색함이 없는 따뜻하기 그지없는 이웃들이다. 이는 ‘지역공동체(community)의 상호부조 기능’이 건강하게 제대로 작동하던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떠한가.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 앞집 옆집 사는 사람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춘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밝힌 보건복지부 ‘2014 시도별·연령대별·성별 무연고자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무연고 사망자는 1008명으로, 2013년의 878명보다 14.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1년 682명, 2012년 719명, 2013년 878명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이른바 ‘고독사(孤獨死)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독거노인은 전국적으로 138만명으로 추정되며 2000년의 54만명보다 2.5배나 늘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를 보면, 독거노인은 2035년에는 다시 현재의 2.5배 수준인 343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4년 무연고 사망자 중 주민등록번호 파악이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무연고 사망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50세 미만 무연고 사망자가 187명으로 2013년 117명보다 59.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고독사가 65세 이상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노인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는 이웃이 어려움에 처하면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원리에 따라 서로 돕는 지역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사회적 경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사람중심의 지역 상호부조’, ‘자치자립’ 등 가치공유의 트렌드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각박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황주(黃州) 도화동(桃花洞) 사람들을 이웃으로 둔 주민이 사뭇 부러워진다.
 
부모 모시기 부담스러워 하는 현세대에 경종
심봉사는 나이 들어 두 눈을 뜨게 될 뿐만 아니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과 재회했으니 남부러울 것 없이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맹인잔치에 참석하러 황성에 들어설 때 낙수교에서 만났던 스물다섯 맹인 처녀 안씨와 나이 칠십에 늦장가 드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한다.


심청전은 주인공 심청이 용궁에서 옥황상제를 만나 옥정연화(玉井蓮花) 꽃봉오리에 실려 황궁으로 인도돼 황제와 혼인한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환타지적 요소와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서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부모에 대한 효(孝)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고을마다 효자, 효녀비를 세워 효행(孝行)을 장려하던 우리 선조들의 의식이 나날이 희석돼가고 있는 오늘날 심청전은 부모 모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우리들에게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글: 김치완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chiwan.kim@hanwh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