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Community

전화고객상담센터

항상 친절히 안내하겠습니다.

042-257-1979

상담시간 09:00 - 18:00
주말 및 공휴일은 휴무입니다.

현장소식

> 커뮤니티 > 현장소식
[경인일보] ‘어버이날 제정 일등공신’ 이돈희 씨
112.☆.162. 102
작성자 : 대전광역자활센터
 
 
▲ 이돈희씨는 “누구나 어버이가 되고, 노인이 된다”며 부모에게 각박해져 가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용인/김우성기자
대학생 시절부터 노인·아버지 날 주장
대학학보 기고로 공론화 ‘공헌 자타공인’
“모두 어버이 되는 진리 가슴에 새겨야”


“요즘 부모는 자식 욕구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손주 보고 싶어 찾아가면 용돈 받으러 온 사람 취급하지 않습니까. 가정이 사회를 이루고, 사회가 국가가 되는 것인데 부모님께 받으려고만 말고 늦기 전에 사랑을 보답해야 합니다.”

어버이날을 이틀 앞두고 만난 이돈희(69·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노인의 날 제정을 혼자 부르짖고 다녔다.

그러면서 1971년 4월 8일을 노인의 날로 정하고 서울 마포에서 기념식을 개최, 가난한 노인 500여명에게 학비로 마련해 둔 40만원을 들여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도 증정했다. 청년의 당돌하고 기특한 시도는 경비 문제로 이듬해 중단됐다.

이씨는 동시에 ‘아버지날’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나라에는 1956년도부터 ‘어머니날’만 있었다. 외동아들로 병세 깊은 어머니와 떨어져 자란 그는 아버지에게서 큰 부정을 느껴 이 같은 운동을 시작했다. 학생 1천200여명을 대상으로 아버지날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 설문 조사해 결과를 곳곳에 제출했다.

몇 년이 흘러 토지평가사로 일하게 된 이씨는 방송 출연, 신문 투고·광고, 사회단체 방문 등 발이 닳도록 뛰며 노인문제를 역설했다. 그때만 해도 노인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터라 그의 고군분투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이후 이씨가 ‘아버지날 제정’을 내용으로 이화여대 학보에 기고와 광고를 게재하자 학교 측에서 실제로 아버지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었고, 평소 이씨의 노력을 알던 각종 유력매체가 다루면서 화제가 돼 마침내 1973년 어머니날과 합친 어버이날이 시작됐다.

그가 직접 제정하지는 않았어도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 데에는 당시 자타가 인정했다.

자활노인마을 건립에 인생의 마지막 꿈을 건 이씨는 최근 유엔을 방문해 재미한국노인회와 ‘세계 어버이날’ 제정에 서로 협조하자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씨는 “나이 50이 되면 직장에서 나와야 하고, 김장 서른 번이면 시어머니가 된다”며 “오늘도 취업문제로 다투다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뉴스가 나오던데, 경로사상이 희미해져 갈수록 누구나 어버이가 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용인/홍정표·김우성기자
<저작권자 ⓒ 경인일보 (http://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